조야회통 흘림 궁서

조선조 태조로부터 
영조에 이르는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를 
연대와 시간 순으로 
편찬한 번역 한글 사서(史書)

서(序)
장서각 도서중 많은 분량이 총사류(總史類) 정사류(政史類) 편년류(編年類) 기사본말류(紀事本末類) 별사류(別史類) 잡사류(雜史類) 등으로 분류되어 소장되어 있지만 여기 소개하는 조야회통은 따로 소개한 바 있는 ‘조야첨재’와 같은 형식의 편년류에 속한다. 이미 중국의 정사를 펴년류로 번역하여 역은 윤용구 대신의 ‘정사긔람’을 소개한 바 있지만 조선의 역사로는 필자가 번역에 손 댄 것이 본서와 조야첨재 뿐이다. 여타 사서나 소설본에서 훌륭한 필적의 모본을 수없이 대하였으나 본서 만큼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강필을 보기는 드믈었다. 민체의 전초 형태미를 갖춘 활달한 기상은 사대부의 언문필일 가능성도 엿보이는데 이는 내용(사서)의 속성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이 책의 정확한 편찬 시기와 국역 시기는 미상이나 내용이 1725년(영조 1년)까지 기술되어 있어 일단은 한문본의 편찬 시기를 그 이후로 추정할 수 있는데,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편찬자는 김재구(金載久,1726∼1791)로 기술되어 있다. 21종이 넘는 이본(異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장서각에는 한글본이 2종 소장되어 있다. 낙선재본 국문 소설 자료의 존재를 감안할 때 이 같은 국역본은 대체로 영조 이후 궁중에 있는 여성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글본 2종은 각각 55책과 47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 소개하여 자료로 삼은 것은 55책 본중 제 일권이다. 그런데, 이 55책본은 21책(광해 즉위년∼4년)과 23책(광해 7∼15년) 사이에 있어야 할 22책이 빠져 있다. 
전체 55책의 체재는 대체로 편년체를 취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태조·정종(1책)태종(2책)세종(2~3책)문종(4책) 단종(5책) 세조·예종(6책) 성종(7∼8책) 연산군(8∼9책) 중종(9∼10책)인종(11책) 명종(11∼12책)선조(13∼20책)광해군(21∼23책)인조(24∼28책)효종(29책)현종(30책)숙종(31∼37책)경종(38∼49,51,53책)영조(50,52,54,55책)
 『조야회통』은 정사와 야사를 편찬한 것이면서도, 편찬자의 의도보다는 사실 자체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특히나 왕조실록은 물론 개인 문집, 기타 구전 자료 등 광범위한 자료를 활용하면서 흥미있는 사건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만을 강조하던 당대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이같은 방식의 책이 나왔으며 비교적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는 사실은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수록된 문학 작품 또한 적지 않은데, 개인 창작 한시와 인물의 일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시조(詩調), 참요(讖謠) 등도 일부 실려 있다.  특히, 한문본과 달리 일부 어휘에 뜻풀이를 해놓은 경우도 있어 국문본만 있는 고전소설 등을 이해하는 데 한글본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글자의 미적 형태에만 치중하는 한글 서법가들에게는 궁체의 여성적 미를 초탈하는데 더 없는 자료일 것이며 나아가 부족한 고문의 이해도 겸하여 득(得)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현대문풀이/편집-고은 지성용

현대어 풀이
본조. 국성은 이씨(李氏)시니 계 전주(全州)로 나시다. 국호(國號)는 조선(朝鮮)이라. 고려(高麗)때
에 은병(銀甁)으로써 화(貨)를 삼으니 명(名)은 이른바 활구(濶口)니 아국(我國) 지형(地型)이 
좁고 길므로 써라. ○서거정(徐居正)의 예원잡기에 왈, 당요(唐堯) 갑진(甲辰)으로 
홍무(洪武) 무신(戊申)에 이르러 도모한지 삼천칠백 팔십 오 년이오 단군 무진
으로 아(我)태조 임신(壬申)에 이르러 또한 삼 천 칠백 팔십 오년이니 
우리 동방 역수(歷數)가 대대 중국으로 더불어 같으니 제요(帝堯) 작(爵)하시매 
단군(檀君)이 일어나고 주무(周武) 서시매 기자 봉(封)하시고 한(漢)이 흥(興)하매 위만이 
오고 송(宋)이 흥하매 고려(高麗) 일어나고 아태조에 이르러 개국(開國)이 또한 고
황제로 더불어 동시(同時)하시니라.○하담(荷潭-金時讓) 파적록(破寂錄)에 왈, 아태조 홍
무 임신(壬申)으로써 개국하사 백 삼년에 이르러 홍치 갑인(甲寅)에 연
산이 서고 중종이 정덕 병인으로써 정국하사 백 삼년에 
이르러 만력 무신에 광해 서니 아국이 백 삼년인즉 흥폐(興廢)
의 큰 운(運)을 이룸이 있음인가.
태조기
강헌 지인 계운 성문 신무 정의 광덕대왕(太祖 康獻 至仁 啓運 聖文 神武 正義 光德大王)휘(諱)시오 자(子)시니 처음 휘(諱) 성계(成桂) 자(字) 중계(中桂)시니라. 환조(桓朝)제 이자(二子)오시니     의혜
왕후(懿惠王后) 지원(至元) 을해(乙亥)십월 십일 기미(己未)로써 영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