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축사

비첩금낭 명사들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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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권창륜 선생의 축사 

초정 권창륜 선생의 축사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서 축사를 하게 됨은 전혀 예정되어 있지도 않은 갑작스런 일이었음을 처음부터 밝힙니다.
 그렇지만 제가 처음 이 자리에서 축사 제의를 받고 맨 먼저 축사를 하게 됨을 기쁘게 여기지 않습니다.

 제가 전혀 의도 하지도 않았고 염두에도 없었던 고은 지성룡 선생의 “『비첩금낭』 고은전”이란 전시 초대를 받고 나서 처음엔 전혀 모르는 사람인지라 조금은 의아했는데 그의 저서인 비첩금낭을 직접 받아보고, 다시 전시장을 들어서서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야 일시에 의혹이 사라졌음을 솔직히 말씀드리면 또 그래서 제가 이 자리서 첫 번째 축사하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오전에 고산 최은철 선생이 고은 선생과 함께 비첩금낭 한 질을 안고 우리 서실을 찾아 왔을 때 처음 보는 지면이 없던 사람인지라 그저 인사차 찾아온 상례적인 만남이겠거니 했는데 발대한 그의 4권에 이른 서책을 보고나서 탄복을 금할 수 없었고 오후에 있게 되는 오픈식에 참석은 물론 축사를 기꺼이 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고은 지성룡 선생의 대표적인 저서 『비첩금낭』을 잠간 스치며 일별(一瞥)한 처지에 불과하지만 이미 한 눈에 이 책이 보통의 서책이 아님을 알았고 지금까지 이만한 실용적인 서예 참고서책을 없었음을 자인하면서 비첩금낭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이제 단언하건대 이 『비첩금낭』 한 질이면 모든 서예인들의 고민이 일거에 해결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에는 16,000개의 비첩과 서체별 코드를 맞춘 명문 명구가 채록되었다 하니 이런 쾌사는 우리 동양 삼국에 아직 있었던 일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서예계 국보임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만한 자료집은 없었던 터이므로 우리도 이제 이 책 하나를 자랑스럽게 대한민국의 서법참고서적으로 추천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비첩금낭』 4권과 『산성일기』 2권외에 전시장 가득 걸린 고은 선생의 60여점을 작품을 둘러보았습니다. 

선생은 분명 『비첩금낭』이나 『산성일기』외의 70여권의 의미있는 서예관련 보조 참고서책에도 누구도 필적 할 수 없는 노력과 결실이 있지만 그의 60여점에 이르는 작품에서 저는 그의 서법적인 저력에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니 분명 선생은 서예계의 삼절(三絶)이라 감언(敢言)하는데 첫째는 정확한 서법에 놀랐고, 이만한 비첩 325권의 원문을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음은 한학에 보통 정통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책인지라 저는 선생이 한학에도 정통한 실력의 소유자임을 인정하는 바이며, 셋째는 처음에 한문 위주의 작품에서 그의 서법 실력에 놀랐지만 다시 한글에도 엄청난 조예와 정확한 법식을 갖춘 실력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선생을 감히 우리 서예계의 삼절이라 부르는 바입니다. 

참으로 고은 선생은 뒤 늦게 초야에 묻혔다 나타나 서예계의 지축을 흔들었으며 우리를 놀라게 하는 서법계의 혜성 같은 존재라 여겨져 우리 서예계로서는 대단한 발견이자 소득이며 특히 그가 발표한 『비첩금낭』과 『산성일기』는 한자와 한글 서체로 대별되는 우리 서예계 양대 산맥의 예술계를 빛낼 귀중한 자료라 칭찬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만지지탄한 감이 잇는 고은 지성룡 선생의 출현을 기뻐하는 바이며, 듣기로는 엄청난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 필(筆)을 놓지 않고 이만한 오늘 같은 쾌사를 이루어 낸 고은 지성룡 선생에게 무궁한 건강을 기원하고, 불후의 명저 비첩금낭의 많은 보급을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초정 권창륜-

 

구당 여원구 선생의 서평

고은 지성룡 선생의 “비첩금낭(碑帖錦囊)”에 대한 구당(丘堂)선생의 서평 -구당 여원구

회남자(淮南子)는 범론훈(氾論訓)에서 처음으로 법고(法古)라는 표현을 썼고 그래서 후세에 法古創新(법고창신)이란 표현이 생겼다.
내가 한국 미술관 1,2관에서 열리는 향정 최향자 대나무전을 보고 이어 오픈한다는 제 3관의 서예전시를 들러보고는 이 전시 내용이 예사롭지 않은 전시임을 인식 하던 차, 근처에서 고산 최은철 선생을 발견하고는 전시의 내막을 물었다.

우선 본 전시의 주인공 고은 지성룡이란 사람이 고산의 옛 30년 지기라는 사실과 오늘 전시가 그의 서예 출판물 “비첩금낭(碑帖錦囊)”4권과 “산성일기(山城日記)” 2권임을 알게 되었고 그 외에도 그가 기간 펴낸 총 74권에 이르는 서예 관련 책 전시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산이 고은 선생의 30년 지기라면 어찌 내가 그를 아직까지 몰랐을까 했지만 이 점 역시 고산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되었으니 고은선생이 30년 칩거 끝에 오늘의 대표적 저작물 비첩금낭 4권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技益進而人不知(기익진이인부지)라 했다. 기예가 익진 할수록 보통 사람들은 점점 알아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기예의 승화는 곧 범인의 이해의 시야를 피라미드 구조처럼 상승하지만 같은 이치로 그 이해의 폭도 줄어든다는 사실이나 우리 고은선생의 노력은 기예의 진화에 동행하는 이해의 폭을 넓히려 이토록 훌륭한 법고창신 할 수 있는 교재를 발간하고 오늘 이 법서의 컨셉에 맞춰 정직한 임서 60점을 선보이게 이른 것이다.

나는 그의 법서(法書) 임서 60점을 통해 그의 30년 성상의 노력으로 법고창신 했음을 발견했고 그 근거가 비첩금낭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 논어에 나오는 온고지신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암 박지원에 의하면 “사람들은 글을 쓸 때마다 문득 고어(古語)를 생각하고 억지로 경전의 뜻을 찾아 무게를 더하고 글자 하나하나마다 위엄을 뽐낸다."고 말했다. 물론 단순한 모방은 대상에 대한 참다운 묘사를 방해할 뿐이다. 

그러나 고문에 대한 단순한 모방 즉 '방고(倣古)' 자체가 법고창신에 방해가 될 수 없으니 창신은 법고를 통해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창작방법론이 바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니 내가 볼 때 '법고'란 옛 것을 본받는 것으로서 옛 자취에 천착함이고 '창신'이란 그 천착한 바의 옛것을 비로소 버리고 새로이 창제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제 고은 지성룡 선생의 비첩금낭을 통해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을 알고 새로이 창제하면서도 법을 지킬 줄 안다면, 다시 말해 법고와 창신을 병행한다면 오늘날과 같이 내노라 하고 쏟아지는 수도 없는 자칭작가들의 창작에 대한 고민이 스스로 풀릴 것이다.

그간 많은 서예가들이 창작의 소재, 곧 문장과 서체의 창신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던가? 본 비첩금낭은 그러한 난제를 일거에 쓸어내 주는 쾌거라고 보는 것이 235개의 비첩에서 16,000개의 문장 코드를 뽑아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서체를 집자(集字)식 문장으로 낸 책들은 많았지만 이토록 비첩의 내용을 전부 해독하여 그 중에서 필요한 훌륭한 문장만 뽑아 서학 임서용으로나 중진급 이상의 서학도 들에게 창작의 소재로 제공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라 본다.
실로 이러한 쾌사는 동양 삼국에 아직까지 없었던 일이니 고은 선생의 그간 30년 각고의 노력이 괜한 수고가 아님을 알 수 있겠다.

이제 많은 서예가들이 이 법첩의 충실한 집성을 통해 더 많은 창작의 의욕과 기익진이인부지(技益進而人不知)한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구당 여원구 기고

청람 전도진 선생의 축사

碑帖錦囊展(비첩금낭전)에 즈음하여

같은 지역에서 30년이 넘게 같은 분야에 동락하며 지내온 고은 선생이 한 아름 책을 안고 내 서실을 들어왔을 때 나는 솔직히 책 보다 30년 지기로서의 그의 노력이 가상하여 반가웠다.
그러나 그가 서서히 풀어놓은 책의 방대함에 우선 놀랐고 그 많은 자료집성이 고은형의 혼자 힘으로 무려 30년에 가까운 세월에 이룬 작업임을 알았을 때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은 나도 비첩임서 중에 만나는 명언명구가 흘려지고 잊혀짐이 아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제 고은 선생이 이를 묵묵한 칩거 속에서 집대성하여 세상에 펴 놓음을 여간 기쁘고 다행한 일이 아니라 생각된다.
 명구 영인본 4권 3,000여 페이지가 주대의 종정문에서 시작하여 당 말, 진초에 이르는 16,000여 개의 글제가 염주를 꿰듯 가득한데 서학도 들에게는 이제까지 없었던 서학의 근본 자료 집성이며 학습은 물론, 작품의 소재로 막힘없는 자료의 원천이 되리라 여겨진다. 

명구의 채록은 모두 원문 그대로여서 짜깁기 집자가 아님에 매력이 있다. 
3,000여 년에 이르는 서예 역사가 네 권에 압축되어 시대별로 정리하였으므로 서체의 흐름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하여 시대적 서체의 발전을 확인 할 수 있어 좋았고, 나머지 네 권에 수록된 해설집은 첫 눈에 보아도 자료의 신선도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서학도들이 흔히 겪는 글감의 빈곤과 서체 선택의 기로에서 오는 머뭇거림에서 해방 될 수 있음이 본 자료의 장점으로 여겨진다.

이제 고은형이 <비첩금낭>이란 명칭을 빌어 그 당위성을 직필로 표현함에 있어서는 그의 진솔한 정렬이 가득함을 보겠고, 그의 배우고자 하는 끊임없는 열정을 볼 수 있어 매우 기쁜 마음에 흔쾌히 그의 개인전에 부치는 글을 써본다.
아울러 30년 가까운 성상을 오롯하게 한 가지 작업에 매진한 고은 지성룡 선생의 옹고집에 경의를 표하며 선생의 앞길에 무궁한 발전을 기대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전도진-

고산 최은철 선생의 추천사

비첩금낭 출간을 축하 하며(고산)

역대 명언·명구 영인본 총 4권으로 삼천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주대의 ‘종정문’으로부터 당 말의 진서 및 초서에 이르기까지 유명비첩에 있는 16,000여 개의 글제를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이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아직 없었던 쾌사로, 온고지신을 과업으로 하는 우리 서단에 하늘이 내려준 홍복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책은 3,000여 년에 이르는 서예 역사를 네 권에 압축하여 시대별로 정리하였으므로 서체의 발전과정을 한 눈에 확인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첩에 있는 원문을 그대로 채록하였으니, 동아시아 특유의 인류애적 문인의식까지 일거에 겸수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영인본은 영인본대로, 해설집은 해설집대로 사용 목적에 따라 일람하기에 편하도록 분집하였으니, 편집인으로서의 노고도 노고려니와 사계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볼 때 매우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가에게 긴요한 글감을 모아놓은 책이 어디 한 두 권이겠습니까 마는 아직까지 그 어느 것도 이 책이 갖는 장점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혹 영인본을 사용하더라도 짜깁기식 집자 방식에, 그것도 단편에 그치거나, 자료수집 및 편집 방식이 산만한 경우가 대부분일 뿐 아니라 글제의 수량도 턱없이 적은 것들뿐입니다. 
그리고 명언 명구 모음집 또한 적잖게 볼 수 있으나 그 또한 고전에서 가려 뽑은 문자만 나열해 놓은 것으로, 실재의 사용례는 확인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감히 단언컨대 이 책이야말로 서가들에게는 글감과 그 사용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보고요, 철학·미학가들에게는 동아시아적 문인의식의 실재를 집성한 금낭으로서 필수 지참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명리 좇아 헤매는 인간사회에서 삼십여 성상동안 칩거하더니 마침내 삼천년의 서예사를 옥구슬로 꿰어낸 고은 지성룡 선생의 노고를 어찌 필설로써 다할 수 있으리요!
다만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며, 오랜만에 지기를 만난 반가움과 그간의 결실을 보고 찬탄한 나머지 만용인줄도 모르고 선뜻 추천사를 수락하고 말았으니, 혹 고은선생께 누가 되지나 않을지 후회막급입니다. 
이왕지사, 졸필을 통해서라도 이 책의 역사적 출현과 필요성을 재삼 역설해야겠기에 무릅쓰고 감히 나섰음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30여 성상을 서예인으로서, 교육자로서, 고전 연구자로서 몸을 아끼지 않고 매진해온  고은선생의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라며, 이번 결실이 모든 서학도의 창가에서  천년만년 지지 않는 꽃으로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2015년 설날 아침 일산 호수가에서 
철학박사 고산 최은철

평헌 안종익 선생의 서평(서예문인화 기고문)-1

평헌 안종익 선생의 비첩금낭 서평   안종익-동방서법탐원회 전임회장
  <아래의 글은 '동방서법탐원회' 전임회장 안종익 선생께서 저의 개인전에 오셔서 축사해 주시고 겸하여 축사의 내용을 보완하여 월간 "서예문인화"에 특별 기고를 하신후 저에게 그 원본을 보내 주신 것을 올린 내용입니다>

고은 지성룡 선생을 알게 된 동기는 특이할 것 없지만 그 분을 알고 나서의 느낌은 기대 이상이었다.
서예인생 40 여 년 동안 주위에 많은 서예 지인들이 있었지만 고은 지성룡이란 사람을 만나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정확히는 그 분이 저서 『비첩금낭』 덕이었다.

 어느 지인의 소개로 예의 비첩금낭을 구매하고부터 고은 지성룡이란 인물에 대해 궁금했는데 마침 지난 4월 인사동 전시에 이은 2차 인천전이 있다기에 만사 제치고 참석하고 나서 솔직히 나는 이 분이 인상에 대해 헤아리기 어려운 면모를 읽었으니 우선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이정도의 방대한 책을 펴낸 사람이라면 아마 지금 고인이 된 분의 책일 것으로 짐작했는데 의외로 예순 중반을 막 넘은 비교적 젊은 분임을 알게 되었고, 다음은 저리도 왜소한 양반이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자료집을 펴 낼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나는 마침 오픈식에 참여한 지기 고산 최은철 박사로부터 이 분의 동향과 정보를 얻었는데 지난 3년 전 암 선고로 위와 대장을 절제한 중대 수술을 받은 경력이 있음을 얻어 듣고 나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숱한 곡절이 있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 5월호 서예문인화지에 소개된 초정 권창륜 선생이나 구당 여원구 선생의 축사에서 잠간 엿 본 바 있지만, 이구동성 고은 선생의 각고한 노력과 비첩금낭의 가치에 대한 평가에 십분 동감하는 입장에서 내가 더 이상의 평가를 한다면 사족에 불과하겠지만 이 분의 개인전시를 통한 나의 유별한 소감이 몇 자 송고하여 본다.

  처음 비첩금낭을 보고 솔직히 좀 과한 표현인지는 몰라도 이만한 작업을 한 개인이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 냈다는 것은 세월의 과다의 문제를 떠나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기 어려운 작업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그 방대한 작업 섭렵에 놀랐고 그 많은 비첩 235종을 다 헤아린 후 요지, 명언 명구를 찾아 시대 순으로 분류했으며 친절하게도 석문 해자 해석에 주해까지 상세히 단 점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예인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소신 있는 저서를 펴 내보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이런 일이야 말로 점점 척박해지고 있는 서예계의 지식풍토에서는 요원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서예인 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비첩 공부는 필수,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이 우리 서예인들이 궁구해야 할 비첩연구의 당위적인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점점 깊이 있는 이론에서 멀어지는 반면, 공모전을 통한 온갖 잡설 속에 묻혀 이전투구식 명리를 좇다 세월만 허비하는 경우가 현실이다. 
나도 많은 비첩을 보아 왔지만 고은 선생이 집성한 방대한 자료에 놀라고 또 그 생경하지만 매우 훌륭한 자료의 소재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랐다. 겸하여 박옥 속에서 구슬이라도 깎은 듯 한 명구 16,000개는 4,000년 서예역사를 주옥같은 명구로 엮은 문장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헌 안종익 선생의 서평(서예문인화 기고문)-2

 
비첩을 보다보면 흔히 지나치는 명언가구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비첩에 박힌 명구들을 의식 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실질적 핵심을 서첩으로 엮은 일이 없었다. 이는 동양 삼국에 처음 있는 일이다.

아마 고은 선생의 업적은 우리 서예 연구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는데 우선 본 자료는 많은 작품의 소재를 제공해 주므로 서예인이 흔히 겪는 서체와 글감 빈곤에서 해방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비첩금낭이란 서책으로 한정된 고은 선생의 진가는 그의 전시장에서 또 다른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선생의 이만한 작품 수준이면 인사동에서 열 번은 개인전을 치르고 남을 실력이건만 이때 것 처음 갖은 개인전이라니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으며 선생의 70점 가까이 헤아리는 하나하나의 작품 속에는 그 분의 서예 역사를 한 눈에 짐작케 하는 다큐가 보였다.

  우선 고은 선생은 잘은 모르지만 한문의 문리를 득한 분이 아니라면 불가능 했을 작업을 통해 그분의 한학 수준을 가늠하게 했고 서체 역시 한문 5체를 절반은 비첩금낭에서 임서한 그대로의 성실한 서법표현의 용기를 보여주었고 절반은 신기에 넘친 달필로 5체를 두루 구사하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라 선생은 십여 점의 한글 서체 작품을 통해서 정직한 궁체의 진수를 보여주는 가 싶더니 차원이 다른 민체의 구사를 서슴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선생의 지신감은 아마 그분의 많은 고문 자료의 소장에도 다분한 연원이 있으리라 믿는데, 이번에 『비첩금낭』 외에 궁체의 보고 장서각 낙선재의 궁중체 진수 『산성일기』흘림과 정자체 2권도 아울러 펴낸 것이다.

자세히 보니 진열대에 쌓은 선생의 저서가 무려 74권, 그 중 3/2가 궁체 자료의 번역과 발굴이었으니 선생의 지금까지 펴낸 한글 자료만 가지고도 아마 한글 서예계를 풍미하고도 남으리라 짐작된다. 

  선생은 이미 1996년도에 궁체자료 100종을 선택, 『궁체백선』을 해제하여 펴낸 바 있는데 다시 궁중자료 278종을 택하여 해제하여 『궁체금낭』을 펴냈다.
그 외에 대표적으로는 국내외 사료집으로 『정사기람』, 『역대기년』2권, 『국조고사』5권, 『조야첨재 3종 3책』 『조야회통 2종 2책, 』 『사문대의록』3권, 『조야기문』등이 있으며 소설류도 『옥원중회연』을 위시한 15종의 주옥같은 단아한 궁체 자료를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이 같은 결과는 이미 선생이 30년 전인 80년도 초에 장서각 군중자료 한글 모본을 거의 백 퍼센트 수집, 분류하여 옥석을 가려 모본이 되는 자료를 현대어로 옮기는 작업을 수행한 결과였으니 선생의 진가를 드러내면 한글 서예계에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생각해 본다. 

​  선생의 비첩금낭 하나만 가지고도 인간의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묻고 싶었는데 이 같은 수많은 한글 자료까지 섭렵하고 지금도 출판을 서두르고 진행되고 있는 미완의 자료가 다수 있음을 듣고 선생의 저작 능력의 한계에 의문이 갔다.

  이제 30년 넘게 은둔에 가까운 칩거 끝에 우리 서예계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리라 믿는 비첩금낭과 그 분의 많은 정리된 한글 자료 공개는 한글 서예의 발전에 한 단계 도약을 기대하게 하는 쾌사가 아닐 수 없다.

 아무쪼록 선생의 건강에 더 이상의 악재가 있지 않기를 바라옵고 더욱 정진된 선생의 노력을 기대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그간의 선생의 노고에 대해 졸필로 박수를 보낸다.-평헌 안종익

인천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박병천교수 추천사

산성일기에 대한 추천사

한글은 그 창제 원리나 구성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한글은 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창제된지 580년밖에 되지 않은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긴 역사를 가진 세계의 많은 문자들에 비교해 볼 때 창제상의 과학성과 실용성이나 문자구성의 조형성이 가장 우수한 세계적인 문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세계문화유산위원회로부터 우수한 기록유산으로 인정받아 1997년 10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이 같은 훈민정음은 최근에 이르러 한글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되기까지 자형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즉 훈민정음 창제당시의 곧은 서선과 네모꼴의 자형에서 실용의 필요성에 따라 필사형의 부드러운 글자꼴로 변형되어 왔다. 이러한 변화 중 조선중기에 궁중에서 이루어지게 된 아름다운 글씨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궁체인 것이다. 

이 궁체 원전은 궁중에서 서간문, 소설, 교서, 일기, 사서등 실용을 목적으로 당시의 궁인들이 써 놓은 실용적 기록들로 장서각. 규장각 등에 소장 보전되어 오고 있는 고문들이다.

이 고문들의 글자꼴에는 또박또박 바르게 쓴 정자체, 조금 흘려 쓴 반흘림체가 있고 서간문과 같이 많이 흘려 쓴 흘림체 등이 있어 그 아름다움은 말로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 하겠다.
 이 글씨들이 오늘날 서예인들이 한글서예공부를 하는데 많이 활용하는 궁체교본이 서간체인 것이다.

그래서 궁체원전의 글자꼴이 아름다워 그것을 보고 서예인들이 임모공부를 하지만 고문으로 된 옛 문장이어서 글을 해석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본인도 사십 여 년 전 장서각 소장 궁체원전에 대한 서체연구를 할 때 수많은 원전들을 대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바로 문장해독이다. 한문서예를 공부할 때 한문 해독도 못 하면서 글씨를 쓰는 답답함이나 한글서예를 하면서 고문을 읽거나 해독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같을 것이다.
이러한 때 궁체원전의 문잘 해독을 바르고 쉽게 할 수 있도록 꾸민 책이 나오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무려 30여 년 동안이나 궁체원전의 고문해석을 연구해온 지성룡 선생께서 역은 20여권의 궁체 법서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소설/조선조 사서인 국조고사 등의 여러 자료를 현대어로 옮긴 서책이다.

이는 약 20여 년 전 선생께서 발표한 “궁체백선” 10권을 보강한 궁체자료 완결편인 셈인데 이번에 그 중 하나의 자료로써 산성일기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저자가 가려 뽑은 각권의 자료는 서체의 아름다움이나 문장의 의미성으로 보아 서예인이나 고전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 중의 필독서라 하겠다.
 각 책마다 원문을 현대문으로 바꿔 풀이했고 상세하게 주석을 달아 이 책을 활용하는 분들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편찬한 값진 책이라 할 것이다.

우리 것을 재 발굴하여 새롭게 유용하게 활용하고 앞으로 더욱 발전시키는데 유용한 ‘궁체법서시리즈’ 중 정자본 〖산성일기〗(I), 흘림본 〖산성일기〗(II)를 소개 추천하는 바이다. 

한글 서예를 하는 분이나 고전문학을 하는 분들, 그리고 이 방면에 관심을 가진 분들께 이 책을 적극 추천하며 많은 활용이 있으시기를 바라며 특히 한글서예 발전에 많은 기여가 있으시길 기대해 봅니다.
          -인천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 박병천

월간 서예문인화 대표이사 이홍연 이사장의 축사 및 서평-1

이홍연 월간 서예문인화/이화출판사 사장의 ‘비첩금낭’전 관전/서평인사동은 매주 다양한 컨셉의 전시가 홍수를 이룬다. 명실 공히 한국문화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곳, 
이곳에 평범하지만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얼른 보아서는 여느 서예가의 개인전에 다름없는 작품전이라 할 것이겠지만 대형 현수막에 쓰여진 대로“비첩금낭 고은전”이라 한 문구에서 무언가 다름을 직감하고 들렀다.

‘고은’은 ‘지성룡 선생’의 아호요 ‘비첩금낭’은 지성룡 선생의 저서를 가리켰다.
한국미술관 제 3관에 가득한 60점의 작품이 비첩금낭에 코드가 꿰어진 작품임을 작가의 설명을 듣고 곧 이해되었지만 대체 ‘비첩금낭’이란 무엇일까 하여 탁자에 놓인 네 권의 A4지 대형 사이지의 두꺼운 서적을 펼쳐보는 순간 아직까지 국내에는 물론 동양 삼국에도 없던 획기적인 자료집성임을 알게 되었으니 곧 서예가들이 겪는 자료의 빈곤에서 해방될 수 있는 중요한 책임을 직감하였다.

  비첩금낭은 서예가들이 모본으로 삼아야 할 교과서적인 비첩 235개를 선정하여 일단 비문을 전부 해독하고 그 중 서예인들의 작품코드에 맞는 글귀를 채록 영인하여 16,000개의 문장에 해석/주해를 성실히 달아 놓았다.

이 책을 보는 순간 이제는 서예인들이 작품을 할 때마다 고민에 빠지는 서체/문장의 빈곤에서 해방될 것 같다는 식견이 들었다.

  나의 이런 짐작은 곧 이어진 초정 권창륜 선생의 축사와 구당 여원구 선생의 축사에서도 언급되어 내 짧은 식견이 옳았음을 깨달았으니 과연 이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무명의 한 서예가가 이루어 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곧 이어지는 저자의 인사말에서 이 점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선생은 지난 30년간 오로지 본 작업에 일관 매진하여 지난해 탈고 했는데 그간 그를 찾아온 지독한 병마 위/대장암과 싸우느라 수년간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 사라져가는 것은 인명만이 아니고 30년 성상의 노고가 같이 이슬처럼 없어질 수 있음을 느꼈다 한다. 

그리하여 부랴부랴 원고를 꺼내어 마지막 혼신의 힘으로 이루어낸 결과임을 말하였다.

놀라게 한 것은 비첩금낭이 4권의 엄청난 규모의 서책임과 그 안에 들어있는 방대한 자료도 그러하거니와 긴 탁자 두개에 포개놓은 그의 저서 74권의 분량에 또한 놀랐으니 이 모든 분량의 책이 지금까지 우리 서단에 두각 커녕은 전혀 이름석자 드러내지 않았던 재야 작가였음이다. 

  그러나 그의 서작 60여점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의 흔한 서예인들의 작품과는 무언가 다름을 느꼈다.

곧 그것이 비첩금낭 4권에 들어있는 법첩 그대로의 활용을 보여주었음이다. 그렇다 선생은 잔재주를 부리며 이 무시무시한 인사동 정글에 입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30년 대작 비첩금낭에 충실하며 독자 서예인들에게 그 활용도를 보여주려는 충직한 자세 그대로였다.

나는 선생의 서책들을 일일이 보고 어떻게 한 개인이, 아니 서예인으로서 이다지 다양한 저술이 가능할 수 있을까 의아했다. 소설이나 시집이나 수필집 이라면 몰라도 아주 편협한 서예라는 장르의 컨셉을 가지고 이토록 많은 저술이 가능함에 또한 놀랐으니 그가 수년간 암과 투병하면서도 끝내 이곳 인사동에까지 나타나 마지막 투혼을 불 지름에 더욱 경외심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편집장으로써 수많은 전시와 발표되는 서책들을 보고 수 없이 많은 평도 해 보았지만 이렇게 한 개인의 방대한 다작을 대해 보기는 처음이다.

선생은 이미 86년도에 한글로 동아미전에 입선하였고 97년도에 ‘궁체백선’ 10권을 발표한 저력 있는 한글작가였음을 알게 되었는데 특히 이번 고은 선생의 신작 발표 ‘비첩금낭’ 4권과 ‘산성일기’2권은 우리 서단 발전에 한 획을 긋는 중대 발표물 임이 분명하다고 평가된다.

 오픈식에서 축사를 맡으신 초정 권창륜 선생께서는 “이제 서예인들이 서예작품을 하는데 있어서 고민이 끝났다. 무슨 서체로, 무슨 내용으로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이 책 비첩금낭 하나에 다 녹아있다. 고은 지성룡 선생의 비첩금낭 하나의 편집 공로만 해도 대단한 쾌사이지만 이만한 책을 내는 데는 결코 한학 실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

월간 서예문인화 대표이사 이홍연 이사장의 축사 및 서평-2

월간 서예문인화 대표이사 이홍연 이사장의 축사 및 서평-2

오픈식에서 축사를 맡으신 초정 권창륜 선생께서는 “이제 서예인들이 서예작품을 하는데 있어서 고민이 끝났다. 무슨 서체로, 무슨 내용으로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이 책 비첩금낭 하나에 다 녹아있다. 
고은 지성룡 선생의 비첩금낭 하나의 편집 공로만 해도 대단한 쾌사이지만 이만한 책을 내는 데는 결코 한학 실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을 선생이 해 내었으니 선생은 분명 한학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음이 분명하다. 항차 선생의 한문 서작을 보니 비첩에 충실한 임서로 조금도 어그러짐이 없었으며 한문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한글 작품이 대단한 경지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선생은 분명 우리 서단에 삼절(三絶)이시다”고 한 말씀이나,
 이어진 구당 여원구 선생의 축사에서 말씀하신 “만시지탄한 감이 있지만 고은 선생과 오늘 처음 만난 자리가 나에게는 여간한 득(得)이 아니라고 본다. 
 어찌 이만한 인재가 재야에 묻혀 이제 사 나타났는가? 선생은 우리 서단에 대단한 충격을 주었음이 분명하고 또한 많은 기여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한 치사가 조금도 과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분의 축사에 어울리듯 선생의 74권의 서책과 벽에 걸린 60여점 작품에서 삼절의 요소는 금 새 눈에 띄었다.
선생의 조예는 삼절 요소 중 한글 서예에도 빛이 보였으니 그가 오늘 발표한 산성일기는 이미 30년 전 탈고한 작품임을 알았다.

내용은 16대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신하들과 유폐되어 52일간 갇혀 국가의 존망의 갈림길에서 항전하다 결국 청 태조에게 3배 절하고 삼전도에서 항복한 그 내막을 궁녀의 아담한 정자와 화려한 흘림형태로 기록을 남긴 자료다.

일기로 기록된 문학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 아울러 서에미적 가치를 두루 겸전한 국내 처음 발표되는 자료이니 만큼 발표물의 의미는 매우 크다 하겠다.

이 밖에 선생은 25종의 궁체 자료를 번역하여 주해를 달아 한글 입문자나 작가들에게 그 모본을 제시하고 한층 더 나아가 고문의 이해를 도왔고 한글 작가들도 고법에 의한 자질을 갖출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선생은 이미 30년 전 한글 작들이나 학도들이 궁체의 본질을 대중적으로 터득하기도 전에 장서각 낙선재의 자료 수백 종 샘플을 100% 수집, 연구하여오다 1997년 ‘궁체백선’ 10권을 발표하였고 이번엔 ‘비첩금낭’ 4권에 이은 또 다른 대작 ‘궁체금낭’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니 전5권으로 되어 있는(총 3000페이지) “궁체금낭”에서 궁체자료의 완전정복이 드러난다. 

수십년전 이미 발표한 궁체백선도 엄청난 작업이었는데 거기에 이은 대작 이은 궁체금낭 이 책 한 질이면 장서각 한글 본 자료 견본은 완비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 발표를 통해 선생은 실로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무엇인가를 여실하게 보여주었으며 화사함과 질박함의 극명한 대비를 예(藝)와 학문을 통해 보여준 문질빈빈(文質彬彬)한 전시였음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모든 고은 지성룡 작가의 실상은 그의 여러 편에 실린 한글 작품성에서 잘 드러난다.

자칫 문(文)으로 치우칠 서가들의 오만한 병폐를 질(質)로 바로잡으려는 선생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선생의 역작을 통한 삼절의 결실을 어찌 이 짧은 촌설촌필(寸舌寸筆)로 다 평하리오. 

고은 선생의 근도핵예(根道核藝)함을 직접 눈으로 봄 만 못하리라 여기며 부디 고은 선생의 30년 칩거에 병마와 싸워 이룬 결실이 밝은 빛을 보기 기대해 마지않는 바이다. 

아울러 무궁한 건강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서예문인화/이화출판사 대표이사 이홍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