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대의록 흘림

사문대의록 해제
사문대의록은 송준길(宋浚吉)의 제자인 송규렴(宋奎濂)이 송시열과 윤증(尹拯)간의 노·소 분당에 관한 내용을 논한 것이다. 
송준길의 사문대의록(총 3권 3책)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일찍이 구 장서각을 드나들던 시절이니 거진 수 십 년 전의 일이다. 당시 모두가 궁체라기는 하나 궁체에서 사뭇 먼 모습의 몇 몇 개인 필체의 모답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 하던 시절이니 사문대의 같은 자료가 공개된들 누가 그 진가를 알랴 싶지만 실은 궁체에서 얻을 수 없는 묘리를 품고 있었기에 필자는 감히 이 글을 법외의 궁체로 간주하여 주목하여 왔다. 거의 민체에 들기 직전의 자유분방한 필치이긴 하나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민체의 잘못된 정의를 범접하지 않았을 뿐더러 궁체의 법식을 조금도 잃지 않은 작품이라 여겨지기에 감히 그 의미를 공개하는 바이다. 서학자들이 주목해야 할 정체를 차치하고라도 본 책이 가지고 잇는 의미는 그 내용이라 여겨진다. 후동문답, 강상문답, 독대설화, 기해봉사, 진수당주차, 청세실소, 기사유소등 일곱 개의 제목으로 풀어나가는 거유 송시열의 설파는 곧 유교의 도의나 그 문화에 대하여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일부의 내용을 밝혀놓은 것으로 우리 서학자들이 한 갓 팔뚝아래 내리는 소기만 가지고 내 세울 자긍심에 앞서 필히 갖출 덕목으로 제시 한 아주 좋은 자질의 자료로 사료되는 바이기에 적극 필독을 권하는 바이다. 그래서 가급적 원문의 형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풀어 놓았으니 고문의 맛도 음미하고 아울러 서체 연구에도 이바지 할 겸 애용하였으면 한다..
사문대의록1-3책을 전권은 조선 후기의 학자 송시열(宋時烈)의 저술 가운데서 춘추대의를 피력한 부분을 한글로 번역한 책으로 3권 3책. 표제는 ‘사문대의(斯文大義)’로 되어 있다. 필사 연대와 필사자는 미상이나, 편차의 내용과 성격으로 보아 정조 연간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서각 도서에 귀중본으로 있다.
권1에는 후동문답(後洞問答), 권2에는 강상문답(江上問答), 권3에는 효묘우암독대설화(孝廟尤庵獨對說話)·기해봉사(己亥封事)·진수당주차(進修堂奏箚)·청이효종대왕묘위세실소(請以孝宗大王廟爲世室疏)·기사오월유소(己巳五月遺疏)가 수록되어 있다.
「후동문답」은 송준길(宋浚吉)의 제자인 송규렴(宋奎濂)이 송시열과 윤증(尹拯)간의 노·소 분당에 관한 내용을 논한 것이다. 「강상문답」은 권상하(權尙夏)의 제자 한홍조(韓弘祚)가 스승과 제자들이 회니시말(懷尼始末) 등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독대설화」는 1659년(효종 10) 송시열이 효종과 독대해 나눈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북벌(北伐)·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 문제 등의 내용들이 있다. 「독대설화」의 원본은 『송서습유(宋書拾遺)』에 ‘악대설화(幄對說話)’란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
「기해봉사」는 ‘기축봉사(己丑封事)’를 잘못 쓴 것으로, 효종이 즉위하던 1649년에 왕에게 시무(時務) 및 유학의 정치적 이상을 13개 조항에 걸쳐 개진한 것이다. 마지막 조항인 “정치를 잘해 오랑캐를 물리치라(修政事以攘夷狄).”는 조항만을 발췌, 번역했는데, 춘추대의 정신에 입각해 병자호란의 국치를 설욕할 것을 주창한 글이다.
「진수당주차」는 1681년(숙종 7)에 송시열이 숙종에게 올린 글이다. 선조의 ‘재조번방(再造藩邦)’과 효종의 ‘복수설치(復讐雪恥)’ 정신을 계승해 민족의 정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건의한 내용이다.
「청이효종대왕묘위세실소」·「기사오월유소」는 1683년과 1689년에 각각 올린 소이다. 효종의 자주 정신을 계승하는 상징으로, 효묘(孝廟)의 큰 뜻을 높여야함을 주청한 글이다.
『사문대의록』은 궐내에서 읽혀오던 일반 소설류와는 달리 대의명분과 국가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송시열 제자의 춘추 정신이 담긴 글을 한글로 옮겨 궁중 내전에서까지 읽게 한 것으로 이해된다.
모쪼록 전 3권의 완편을 통하여 우리 한글 서학자이 궁체를 벗어나 더욱 정진할 묘처를 궁진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언문의 문법이 일치함이 없어서 지명이나 인명표현에 많은 부분 괴리(乖離)한 곳이

현대어 풀이
사문대의록(斯文大義錄-유학의 입장에서 유교의 학문,유학자를 총칭하는 말)
후동문답 제월당(霽月堂) 송판서(宋判書)지은 바니 명(名)은 규쳠(렴-奎濂)이오 자(字)는 성원(도원-道源)    이라.
손이 있어 주인더러 물어 가로대 이성윤(李誠胤)가(家)에 
일을 위로 조신(祖神)으로부터 아래로 위포(韋布) 선비 에 이
르기 각각 시비(是非)를 세워 치며 붙드는 바 현수(懸殊)하
더니 오늘날 나양좌(羅良佐)의 상소(上疏) 나기에 이르러 논의 
더욱 괴격(怪隔)하야 거세파탕(擧世破湯)하니 어찌 하면 
그 실사(實事)를 얻으리오. 주인이 가로대 이는 정하기 
어렵지 아닌 의논이로되 세상에 자세히 본
말(本末)을 아는 이 없는 고로 치는 자 능히 그 근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