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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첩금낭 발표에 대한 [월간서예]지 서평 1

고은 지성룡 선생의 ‘비첩금낭’에 붙여-월간서예 편집부

“고은 지성룡 비첩금낭전”이 한국미술관에서 개막한다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기에 우선 ‘지성룡’이란 분의 이름 석자도 처음 들어보지만 발표한다는 ‘비첩금낭’이란 책도 기이하여 들러 보았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범상한 전시가 아님을 한 눈에 느낀 것은 겨우 제목만 보이게 겹겹이 포개 진열해 놓은 선생의 서작(책)들이 두개의 잇대어 붙인 장탁자에 가득한 것도 모자라 여러 권 시리즈물이나 전집물은 아예 수북하게 쌓아 놓은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74권이라는 것이다.

대체 소설이나 시집도 작가가 책을 내려면 수년에 한권 내기도 어렵거늘 어찌 일개 무명의 서예가가 이토록 많은 책을 썼는지 나는 한 권 한권 살펴보고는 또 한 번 놀랐으니,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서예 작품인 도록 형식의 책자가 아니라 모두 서법가들이 꼭 필요로 하는 이론서나 자료서적 이었던 것이다.
 우선 첫 입구에 A4용지의 대형 크기(29,7 x 21,0 CM)에 총 3,000 페이지, 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비첩금낭”의 방대함에 놀랐고, 첫 눈에 한 개인의 작품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노력과 인고가 필요하였음을 직감케 하는 내용의 구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항차 이 책을 지난 30년간이나 집필한 선생의 고집스런 결과임을 알았을 때 무슨 말을 더 하리오.

서예인들이 법체로 삼아야 할 꼭 필요한 법첩 235개를 전부 판독하여 그 중 가장 서예인들이 작품화 할 수 있는 정수 16,000개의 어제 문구를 채록하여 영인하였고 거기에 주해까지 상세히 달아 이 책 하나면 서예인들이 고민스러워 하는 서체의 유형과 문장의 자료 빈곤에서 오는 고민이 일거에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잠시 후 초정 권창륜 선생님의 축사에서도 이 점을 언급되었지만 실제로 서예인의 고민이 작품시 자료의 빈곤도 문제려니와 법첩을 임서할 때 전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모답만 하는 실정이 현실이니 한문 지식을 득(得)해야 할 지극히 타당한 상식을 무시하고 문자의 예술성에 치중, 극히 기형적인 예술의 기(技)를 익히는 현실이므로 본 책은 이런 점에서도 문장을 이해하면서 습자 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 인식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고은 지성룡 선생은 비첩금낭 4권 외에 2권짜리 “산성일기” 궁체 자료도 발굴하여 단아한 궁체의 정자체 모델과 유려하게 발달한 흘림 궁체의 모델을 선보였는데 “산성일기”는 인조(조선왕조 16대)가 남한산성에서 오랑캐 청태조의 공격에 의해 48일간 유폐되었다가 결국 삼전도에서 삼배 절하고 굴욕적 항복을 하기 까지의 52일간의 기록을 일기로 또박 또박 써내려간 어느 이름을 밝히지 않는 궁녀의 언문 기록이다.

당연히 사료적, 문학적, 문자 예술적(한글 궁체서예측면) 가치가 풍부한 책이라 하겠다.
이런 작업은 보통의 서예인들이 쉽게 할 수 없음은 한학에 일천하기 때문인데 선생이 필시 한학에 대단한 경지에 있지 않을까 의구스러웠는데 그 분의 인사말씀에서 겸손한 말씀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받은 교육은 서당을 어릴 적 수년간 다닌 것이 전부라고 하는데서 대략 짐작은 갈 수 있었다.

작가 고은 지성룡 선생과 깊은 대화는 못 나누었지만 답례 인사말씀에서 이 책이 나오된 경과를 잠시 들을 수 있었다.
선생은 지난 수년간 엄청난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며 사경을 헤메다 겨우 회복한 것이 엇 그제 인데 퇴원 후 인간의 천명이 경각의 문제임을 깨달고 부지런히 원고를 끄집어내어 부랴부랴 퇴고 할 수 있었음을 밝히셨다.

아마도 선생은 앞으로 더욱 정진하려는 욕구, 추구의 열정에 부지노지장지(不知老至將之) 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부디 비첩금낭이 모든 서예인들에게 법체의 모델로 자리매김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며 작가 고은 지성룡 선생의 건강에도 비첩금낭의 영광처럼 서광이 있기를 바리마지 않는다. 

비첩금낭 발표에 대한 [월간서예]지 서평 2
월간 서예 5월호 게재기사

월간서예, 비첩금낭/산성일기 출간에 즈음하여.

총 74권에 이르는 저서를 펴낸 고은 지성룡 선생이 필생의 역작 『비첩금낭』권과 『산성일기』2권의 출판을 기리는 “비첩금낭 고은전”을 4월 1일부터 7일 까지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었다.
이번 전시는 『비첩금낭』과 『산성일기』의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35년간 제작한 작품 5체 한자 서예작품과 한글 궁체 작품 등 총 60여점을 함께 전시하였다.

고은 지성룡 선생은 이번 전시 도록의 서문에서 “서예에 흥미를 잃어갈 무렵 찾아온 병마의 시련은 내게 마지막 소명을 주었습니다. 
 위기를 넘기고 퇴원 후, 문득 창가의 원고 뭉치들의 서늘함에 놀라 마지막 미완의 순간을 확인하고 30년 성상에 시달린 원고들을 꺼내어 내 인생의 숙명만큼이나 처절한 마지막 작업을 끝내고 숙원인 개인전을 겸하게 되니 실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30년을 넘게 칩거하며 서예의 쓰고 단맛이 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세월은 덧없이 흘렀고 귓가에 서리만 앉았습니다.
이제 개인전이랍시고 몇 점 내 놓으니 여간 부끄럽지 않으나 어찌하랴, 오늘의 발표전이 내 기예의 표출이기에 앞서 이 인생 전부를 쏟아 넣은 장(場)이어니,
제현(諸賢)에 바라는 마음이 어줍쟎은 작품 몇 점에 국한 할 것이 아니라 수 십 년 세월에 무지한 고집이 일궈낸 비첩금낭의 평가에 머물러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고은 지성룡 선생의 30년간 집필을 통해 빛을 본 『비첩금낭』은 A4지 크기에 3,00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을 4권으로 나누어 펴냈는데, 이 책은 서예인들이 법체로 삼아야 할 235개의 비첩을 모두 판독하여 그 중에서 서예인들이 작품화 할 수 있는 16,000개의 아름다운 문구를 채록, 영인하였고 해설, 주해까지 상세히 달아 이 책 하나면 대부분의 서예인들이 느끼는 서체의 유형과 문장의 자료 빈곤에서 오는 고민이 일거에 해결될 수 있도록 엮었다.

 서예가 고산 최은철 박사는 『비첩금낭』에 대해 “이 책은 3,000년에 이르는 서예 역사를 네 권에 압축하여 시대별로 정리하였으므로 서체의 발전 과정을  한 눈에 학인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첩에 있는 원문을 그대로 채록하였으니 동아시아 특유의 인류애적 문인의식까지 일거에 겸수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영인본은 영인본대로 해설집은 해설집대로 사용 목적에 따라 일람하기에 편리하게 분집하였으니 편집인으로써의 노고도 노고려니와 수년전 중대 수술을 마치고 마지막 남은 생명의 처절한 몸부림을 쏟아 부운 흔적이 역력하여 실로 내막을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과 연민을 금치 못 하게하는 비장함이 숨어 있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사계(斯界)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 볼 때 매우 벅찬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서가(書家)들에게 긴요한 글감을 모아 놓은 책이 어디 한 두 권 이겠습니까마는 아직까지 그 어느 것도 이 책이 지닌 장점과 비교 해 볼 수 있는 책은 본 적이 없습니다.  혹 영인본만을 사용하더라도 짜깁기식 집자 방식에, 그것도 단편에 그치거나 자료 수집 및 편집방식이 산만한 경우가 대부분일 뿐이며 글제의 수량도 턱없이 적은 것들뿐이어서 서가들로 하여금 외면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족한 점을 본 비첩금낭은 일거에 잠재웠을 뿐 아니라 명비 명첩에서 가려 뽑은 가절 가구만 16,000개라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히 단언컨대 이 책이야 말로 서가들에게는 글감과 그 사용 예들을 확인 할 수 있는 보고요, 철학, 미학가들에게는 동아시아적 문인의식의 실재를 집성한 금낭(錦囊)으로써 필수 지참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산성일기』는 정자본과 흘림본 두 권으로 역시 도서출판 다운샘이 간행해 온 “한글서예총서”로 출간되었는데 『산성일기』는 인조(선조왕조 16대)가 남한산성에 오랑캐 청 태조의 공격에 의해 48일간 유폐되었다가 결국 삼전도에서 굴욕적 항복하기까지의 52일간의 기록을 일기로 또박 또박 고문 궁체로 써 내려간 사료다. 어느 이름 없는 궁녀의 단아한 정자체 1권과 유창 유려한 필치의 흘림본으로 구성되었다.   

서예문인화지 비첩금낭 연재기사 서평

锦囊(금낭). 비단 주머니. -월간 서예문인화 편집국장 이용진

『비첩금낭』의 저자 고은 지성룡 선생이 새로 쓰는 서예사“비첩의 금낭을 토대로 새로 쓰는 서예의 역사”를 2016년 7월호부터 연재한다.

본 연재물은 비첩의 명구 16,000개의 코드를 재해석하여 금낭(錦囊)에 넣어 집성한 자료 “비첩금낭”에 토대를 두었다. 따라서 본 연재는 갑골문이 최초문자 자료이긴 하지만 채록 할 명언이 없으므로 그 개요만 적는다 
锦囊(금낭). 비단 주머니. 
비록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지만 어떤 도인이나 달인이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열어 보라고 미리 종이에 묘책을 적어 비단 주머니에 넣어 주는 장면을 더러 보았을 것이다. 
일러 锦囊妙计(금낭묘계)라 한다.
비단 주머니(錦囊)에는 아무런 잡쓰레기가 넣어져 있지 않다. 
거기에는 때로는 사람의 명을 살리기도 하고 생활을 풍족하게도 하는 지혜가 들어있다. 
옛날, 시인이 주로 시고(詩稿)를 넣어 두는 데 사용하였으며 때로는 시상(詩想)이나 문장의 요체(要諦)가 떠오르면 적어 넣었다는 금낭(錦囊)은 아마도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선생이 수시로 떠오르는 시상이나 수필, 또는 문장의 자료가 떠오르면 적어 넣었다는 엽앙(葉盎)을 금낭(錦囊)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덕무 선생은 앙엽기(盎葉記)를 완성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비단주머니라 이름 함은 궁낭(宮囊)이 떠오른다.
조선 시대에 궁(宮)에서 정월 첫 자일(子日)과 해일(亥日)이 되면 임금이 가까운 신하들에게 비단 주머니를 하사한다. 이를 자일이나 해일에 내려 주었다 하여 ‘쥐 주머니’ 즉 자낭(子囊). 또는 ‘돼지 주머니’, 즉 해낭(亥囊)이라고도 불렀는데 모두 비단 주머니이니 만큼 금낭이다.

새해 첫 조회 일에 신하들이 이것을 차고 조회에 참석하였다. 
그 주머니 속에는 그해 풍년을 비는 뜻으로, 곡식의 씨를 태운 것을 넣었다고 하는데 아무튼 금낭에는 매우 귀히 여기는 것을 넣었음은 틀림없다.

「碑帖錦囊」(비첩금낭)
서예인들의 귀히 여기는 법서 비첩 235개 중에서 필요한 16,000개의 작품코드 문장이 모두 귀히 여길 만한 명구 명문장, 이를 넣은 비단주머니, 비첩금낭을 토대로 ‘서예문인화’ 매호에 이어질 연재기사에서는 비첩 235개의 의미를 새롭게 비틀어 볼 것이며 매 비첩에서 응용할 만한 문장들을 대강 소개할 것이다. 
-월간 서예문인화 편집장 이용진

비첩금낭 고은전 묵가(墨家)지 서평

비첩금낭 고은전 묵가(墨家)지 서평
고은 지성룡 선생의 저서 『비첩금낭』1~4권과 『산성일기』2권(정자본/흘림본)의 출간을 기념하는 개인전 “비첩금낭 고은전”이 열렸다.

한국미술관 2층 제 3전시장을 가득 메운 60여점의 작품과 81권의 저서는 오랜 세월동안 저자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초정 권창륜 선생은 축사에서 “대한민국 서단에 삼절(三絶-서법, 학문, 저술)이 탄생하였다”평하였으며 모든 서예인들의 영원한 숙제인 “글제 선택과 서체 선택의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 주는 쾌사“라고 극찬하였으며 구당 여원구 선생은 “만시지탄한 감이 있지만 나는 오늘 고은 선생과의 만남이 처음 이긴 하지만 여간한 득이 아니라고 본다. 

어찌 이만한 인재가 재야에 묻혀 이제야 나타났는가? 선생은 우리 서단에 대단한 충격을 주었음이 분명하고, 또한 많은 기여가 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축사에서 밝혔다. 

또한 인천의 대표적인 서예가 청람 전도진 선생도 “나도 비첩을 임서하면서 만나는 많은 명구 명문장이 그저 가볍게 흘려지고 있음을 아쉽게 여겨 왔는데 이번에 고은 선생이 묵묵한 칩거 속에 이를 집대성하여 모든 서예인들이 활용할 수 있게 번역, 편집하여 냄을 매우 다행 스럽고 기쁜 일이라 생각 한다”고 소감을 발표하였다.

『비첩금낭』은 3,000년에 이르는 서예역사를 4권 3,000여 페이지에 압축하여 요점이 되는 명구들과 뽑아 시대별로 정리한 책으로. 서체의 발전과정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의 작품 활용에서 살아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영구적인 보석 같은 자료집이라 평가된다.

이 책은 서예인들이 모본으로 삼아야 할 법서 비첩 135개의 자료를 선정하여 비분과 첩문(帖文)을 모두 해석하여 작품에 활용할 만한 글귀 16,000개의 원문과 해석, 주해를 상세히 담았다.

서예인들의 글제와 서체 선택과 작품구상에 도움이 되도록 신경을 쓴 작가의 세심함과 노력이 돋보이는데, 그 방대한 양의 비문 해석과 글귀 선별, 편집을 오로지 혼자서 30년에 이르는 세월을 매진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 초인적인 노력에 감동을 받았는데, 그 뿐 아니라 이에 버금가는 수많은 그의 저서 이른 권이 넘는 서책을 대하고는 할 말을 잃었다.

이번에 발표한 『비첩금낭』외에 동시에 선보인 『산성일기』는 이미 97년에 인천시 문화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출간 되었던 것을 다시 홀림본 까지 새롭게 번역하여 펴낸 것이라 하는데, 산성일기는 조선의 16대조 인조가 청 태조 누루하치의 침공으로 48일 동안 남한산성에 포위당하였을 당시를 일기 형태로 쓴 한글 궁체 자료로써 나만갑(羅萬甲1592~1642)의 한문본을 어느 궁녀가 다시 한글로 풀어 쓴 것으로 짐작되는 순 우리글 사료이므로 역사성이나 자료의 가치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발표물이라 여겨진다, 

 본 산성일기는 어쩌면 구체 원본형태의 원문을 직접 현대문으로 주해하여 펴낸 책으로는 최초의 자료가 아닌가 여겨지는데. 작가 지성룡 선생을 벌써 20여년 전에 이 같은 가치에 주목하였던 것이다. 

편역자 지성룡 선생은 서문에서 흘림본과 정자본의 두 서체의 예술적 가치를 상세히 열거하면서 모든 초심자나 전문적인 한글 서예가들의 일독(一讀)과 임서(臨書)를 권하고 있다. 
-월간 墨家(묵가) 편집부 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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